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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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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경향신문
박래용 디지털뉴스 편집장

조선에 2대 국치(國恥)가 있다. 병자국치와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는 경술국치이다. 병자국치는 1636년 병자년 인조가 한강 동쪽 상류 삼전도에서 청(淸)나라 태종에게 신하를 뜻하는 푸른색 관복을 입고 항복의 예를 올린 것을 말한다. 결과는 처참했다.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수십만명의 양민과 부녀자가 청나라로 끌려갔다. 조선은 청과 11개항의 조약을 맺었다. 그중엔 ‘압록강을 건너간 피로인(被虜人·포로) 중에서 도망자는 송환한다’는 조항도 있다. 이 조약에 따라 고국으로 도망쳐 온 포로들은 다시 청으로 끌려가 발뒤꿈치, 아킬레스건을 잘리는 형벌을 받았다.

요즘으로 치면 인조가 청과 조약을 맺으려면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우리 헌법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미치거나 국가에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사전동의를 받도록 못박고 있다. 모든 조약이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 제60조는 반드시 국회 동의가 필요한 조약을 하나하나 명시해놓고 있다. 상호원조, 안전보장, 중요한 국제조직, 우호통상항해, 주권의 제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등이다. 우리뿐 아니다. 현대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예외없이 국회에 조약 동의권을 부여함으로써 행정부를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중요한 국제 약속의 체결에 입법부가 관여하도록 명문화해놓은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국민의 대표들로 하여금 조약 내용을 요모조모 잘 뜯어보라는 것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그 헌법 정신을 짓뭉갰다. 2011년 11월22일 한나라당은 국회 본회의장 문을 걸어 잠그고 경위들로 세 겹 네 겹 방패를 친 채 향후 수십, 수백년간 국민생활과 직결된 초대형 조약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4분 만에 뚝딱 날치기 가결했다. 조약에 달린 이행 법률만 14개다. 이 역시 1분30초마다 한 개꼴로 모두 통과시켰다. 외교통상부 장관의 제안설명도 생략했다. 본회의장 방청석과 기자석을 봉쇄하고 회의 진행상황을 생중계해오던 국회방송도 중지시켰다. FTA가 나쁘다는 것도 아니요, 영영 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요, 시한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국회는 그동안 피해 대책은커녕 번역문 오류조차 제대로 점검하지 못했다. 그러니 늦게라도 손익계산이 어떤지, 독소조항은 없는지 꼼꼼하게 따져보자는 것뿐이다. 집권당은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였다.

장사하는 데 왈왈댄다고 처자식들 손발을 묶어놓고 계약서에 도장 찍는 가장은 없다. 보통 사람들의 상거래에서도 상대가 희희낙락하면 혹시 손해보고 있는 것 아닌가 곰곰 셈을 해보는 게 이치다. 미국 의회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불러놓고 박수를 치며 이 조약을 통과시켰다. 정상이라면 “우리가 뭐 밑진 것 없나”라고 다시 한번 챙겨볼 일이지만, 오히려 미국이 통과시켰으니 우리도 한시 바삐 처리해야 한다고 닦달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미 언론이 “한국은 대미무역에서 오랫동안 흑자였지만 앞으로는 농산물 수입이 크게 증가해 흑자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고 보도한 것은 헛똑똑이 ‘비즈니스 맨’을 조롱한 것과 같다.

이 정부 들어 가장 중요한 역할은 총리도 장관도 당 대표도 아닌 국회 경위와 물대포가 도맡고 있다. 거의 모든 주요 현안은 국회 경위들이 처리해주고, 시민들의 반발은 물대포가 틀어 막고, 국민의 눈과 귀는 친여 보수언론이 뒤틀어놓는다. 정치하기 참 쉽다. 이게 한국 대의(代議)정치의 실상이다. 청나라에 끌려간 백성들이 시뻘건 만주 벌판에서 노예처럼 살 수도 그렇다고 고국으로 돌아올 수도 없었듯이 지금의 시민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반헌법적 폭거를 저지할 수도, 입도 뻥긋할 수도 없다.

경향신문이 11월24일자 1면에 ‘한·미 FTA 비준안 찬성한 국회의원 151명’의 사진과 이름, 지역구를 게재한 것은 이들을 역사에 기록하기 위해서다. 후손들은 국민의 삶과 나라의 경제 체제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은 외국과의 중대 조약을 어둠 속 밀실에 숨어 통과시킨 ‘국민의 대표’들이 누구인지 알 권리가 있다. 찬성 버튼을 누른 의원들은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질 의무가 있다. 독자들의 눈물과 한숨과 분노, “이 얼굴들을 꼭 기억해 오늘의 치욕을 갚아 주겠다”는 그 다짐은 경향닷컴에 원문 그대로 실려 있다. 이 역시 기록이기 때문이다.

400년 전 인조 치하에서 나라로부터 정치로부터 버림받은 백성들의 마지막 활로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구하는 방법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병자국치를 다룬 영화 <최종병기 활>은 주인공이 뛰어난 활솜씨로 청에 끌려간 누이를 혈혈단신 구출해오는 픽션을 그리고 있다. 다행히 21세기 대한민국에선 모든 시민이 최종병기를 하나씩 쥐고 있다. 바로 표다. 투표는 시민이 직접 국가 권력에 개입하는 적극적 기본권이다. 신궁(神弓)의 재주도 필요없다. 한탄은 이제 그만, 시민들은 스스로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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